레고, 혁신 플랫폼 갖춰 매년 60% 교체

2019-12-17

AR 제품도 내놔 불황 모른다…“ 레고 블록은 일회용 플라스틱이 아니다.”


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

레고(LEGO)의 세계에선 상상과 현실의 구분이 무의미하다. 어린이 에서 어른까지 누구든 레고 블록만 으로 자신의 세계를 세울 수 있어 서다.‘ 누구든지 자신만의 레고 스 토리를 갖고 있다(Everyone has their Lego story)’는 말이 있을 정 도다. 브랜드 가치만도 75억7100 만 달러(약 8조8000억원)에 이르 는 것으로 지난해 평가됐다. 장난 감 회사 가운데 세계 최고다. 이런 레고를 요즘 이끄는 인물이 바로 최고경영자(CEO) 닐스 크리스티안 센(53)이다. 그가 지난달  한국을 방문했다. 한국 법인의 경영과 시 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.

레고가 1932년 덴마크에서 탄생했 다. 입맛이 순식간에 변하는 고객(어 린이)을 상대하는 장난감 시장에서 80년 정도나 생존했다.

“2032년이 되면 설립 100년이 된다. 우리는 단순히 생존하는 데 그치지 않 았다. 수십 년 동안 유기적 성장(M&A 로 몸집을 불리는 방식이 아닌 자체 제 품 개발과 판매로 이룬 성장)을 이뤄냈다.”

창립 87년, 브랜드 가치 8조8000 억원

비결이 궁금하다.

“목적(비전)이 분명하다.‘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?’란 근원적인 질문에 우리 는 아주 분명한 답을 갖고 있다.‘ 내일 의 건설자’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그들에 게 영감을 준다는 것이다. 그리고 품질 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원칙이다. 덕분 에 세계 부모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.”

구체적인 비결을 알고 싶다.  

“레고엔 혁신 플랫폼이 있다. ‘레고 시스템 인 플레이(LEGO System in Play)’이다. 이 시스템 덕분에 끊임없이 혁신할 수 있다. 해마다 제품 포트폴리오 60%를 교체 가능한 이유다.”

회사 역사가 긴 만큼 여러 고비나 변곡점 이 있었을 텐데. 

“2000년대 초 위기를 돌파한 사례가 있다. 이때 핵심 경쟁력과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. 요즘 레고 구성원들은 각자 영역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회 사들과 협업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고 있 다. 미국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와 손잡고 찍은 레고 영화가 대표적인 협업 사 례다. 이런 협업은 2000년대 초 위기 이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”

크리스티안센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, 레고는 1999~2003년에 위기를 맞았다. 미국 경제전문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가“ 거의 파산 지경 이었다”고 묘사할 정도의 위기였다. 원인은 지나친 제작 비용이었다. 레고는 비용과의 전쟁을 치러 위기에서 벗어났다. 요즘엔 어떤 리스크를 주 시하고 있는가.

“오늘날 디지털은 레고 구성원들뿐 아 니라 모든 사람의 화두다. 기업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다. 이미 1980년대 미국 MIT대학 미디어랩(Media Lab)과 협업했다. 그 결과 나온 혁신이 바로 마인드스톰(로봇 을 만들고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모델) 이다. 이는 레고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 령이었다. 요즘 레고 모델 가운데 디지 털 요소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.”

레고 놀이, 과학적 재능 키워줘

요즘 한국 어린이들은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고 있다. 

“어린이들이 레고 블록을 손으로 만지 며 느끼며 즐기는 놀이는 계속 유지될 것 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. 동시에 어린이 들이 아주 부드럽게 아날로그적(물리적) 인 장난감과 디지털(가상) 세계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요즘, 디지털 요소가 촉감 을 느끼며 하는 레고놀이를 강화해줄 것 으로 본다. 가상 세계와 디지털 영역 사 이에 알맞은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은 레 고가 앞으로도 계속해야할 일이다.”   

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주면 좋겠다. 

“올해 내놓은 레고 히든사이드 (Hidden Side)엔 증강현실(AR)이 적용 됐다. 어린이가 손으로 만든 모델에 스 마트폰을 비추면 캐릭터가 뜬다.”

AI(인공지능) 시대는 어떻게 대처할 건가.

“AI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다. 우리는 이미 AI 요소를 기존 레고 모델에 적용하고 있다. AI 기법을 이용해 문자 로 이뤄진 조립설명을 시각장애인이 이 해할 수 있는 오디오로 변환할 수 있도 록 했다. 그런데 신기술을 도입할 때 우 리에게 정말 중요한 점은 레고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어린이들을 어떤 해로운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.” 장난감 시장 분석가인 리처드 고트리 브 글로벌토이엑스퍼트 대표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“ 레고뿐 아니라 하 이엔드(고급)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들이 맞고 있는 리스크 가운데 하나는 인구 노 령화”라며“ 고가 장난감을 살 수 있는 능 력을 갖춘 나라의 어린이들이 줄어들고 있다”고 지적했다. 노령화가 디지털과 AI에 버금가는 위협요인일 수 있다는 얘기다. 이에 대해 크리스티안센은“ 레고 를 접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아시아 지역 에 여전히 많다”고 간명하게 대답했다. 

요즘 플라스틱 오염이 이슈다. 플라 스틱으로 만들어진 레고를 살 때마다 부모들은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. 

“레고 블록은 일회용 플라스틱이 아니다. 대를 이어서 놀 수 있는 제품이다. 게 다가 우리는 석유에서 나온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만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니다. 사탕수수에서 나온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. 이미 레고 제품 1~2%가 사탕수수에서 나온 플라스틱으 로 만들어져 있다.”    한국 시장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. “여러모로 선진화한 시장이다. 디지 털이 한국 사회와 어린이들의 놀이문화 에도 통합돼 있다. 한국 어린이들은 레 고 블록뿐 아니라 디지털 장난감을 갖고 노는 데 아주 자연스럽다. 레고 히든사 이드가 한국에 소개된 이후 아주 인기를 끌고 있다.”

한국이 글로벌 기업의 테스트 베드(신 제품 1차 출시국)인 경우가 많은데. “레고 입장에서 보면 세계 모든 나라 가 독특함을 갖고 있다. 모든 나라의 시 장이 테스트 베드다. 게다가 우리는 세 상에서 가장 뛰어난 비평가를 갖고 있 다. 바로 어린이들이다.”

한국시장에 잘 맞는 제품이 있을 듯하다. 

“한국이 중시하는 혁신과 노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학적 재능을 키워주 는 레고놀이가 잘 어울리는 듯하다. 이 는 놀이에 초점을 맞춘 올해 누리과정 (3~5세) 개편안과 관련이 있다.”

강원도 춘천에 세우려다 중단된 레고랜 드는 언제쯤 문을 열까. 

“레고그룹이 레고랜드를 소유하거나 운 영하는 곳이 아니다. 멀린엔터테인먼트라 는 회사가 레고랜드를 건설·운영한다.” 멀린은 영국 회사다. 레고의 지주회사가 멀린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 다. 춘천 레고랜드는 2011년부터 추진됐 다. 하지만 각종 소송과 문화재 발굴 등의 우여곡절 탓에 아직 착공도 안 된 상태다.